Becoming Stone: From the Remains
2026. 10. 16 - 2027. 02. 28
신미경은 1990년대 후반부터 서양과 동양, 고전과 현대를 오가며 역사적 유물과 문화적인 도상을 다양한 재료로 번역하는 작품을 선보여왔다. 그는 일상적인 재료인 비누를 예술의 재료로 활용하는 것과 더불어, 도자기와 같은 여러 매체를 통해 작품을 고정된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사유하도록 만들었다. 사라지는 것과 존재하는 것 사이를 탐구하고 작품을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그는, 미술의 언어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대상을 인식하고 명명하는 관념적인 조건들을 다시 생각해 보도록 만든다.
이번 AOD 뮤지엄에서 신미경은 개인전 《Becoming Stone: From the Remains》를 통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그간 이어온 연작 중에서도 ‘거석 시리즈’에 집중하는 개인전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의 중요한 출발점 가운데 하나에는 2019년부터 작가가 제작해 온 ‘Megalith’ 연작이 있다. 오래전 유물이나 광물 덩어리처럼 보이는 도자 조각들을 쌓아 거대한 암석 구조물로 제작한 작품은, 흙을 질료적 출발점으로 삼으면서도 고고학적 유물의 형상과 동시대 조각의 언어가 교차하는 지점을 만들어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여기서 비롯된 물질과 시간, 사물의 인식에 관한 질문을 다시금 불러온다. ¹
‘Megalith’ 연작은 작가가 경험한 하나의 우연한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2019년 신미경이 네덜란드의 EKWC에 머물며 작업하던 당시, 작가는 앞서 가마를 사용했던 다른 작가의 대형 도자 작업이 소성 과정에서 파손되면서 남긴 수많은 파편을 발견했다. 본래 의도했던 작품에 도달하지 못한 채 남겨진, 말하자면 실패한 작업의 부산물이었다. 그러나 신미경은 그곳에서 다른 것을 발견한다. 작가는 이를 이렇게 후술했다. “신미경은 그곳에서 실패한 도자 작품의 잔해가 아니라 마치 거대한 지질학적 사건 이후 남겨진 암석과 같은 것을 보았다.”
이 일화에서 우리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태도를 살펴볼 수 있다. 예기치 못한 사건에서 새로운 형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또 다른 가능성의 시작으로 바라보는 것. 그의 조각은 완결된 형상을 제시하기보다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하고, 제작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능태를 품는다. 또한 전시장에 놓인 이후에도 주변 환경과 관계 맺으며 변화함으로써 끊임없이 다른 무엇이 되어가는 상태에 놓인다. 이처럼 신미경은 조각을 통해 무엇이 사물을 발생시키고 지속시키며 변화하게 하는지를 질문한다. 하나의 사물이 이전의 무엇으로부터 출현하고, 잠정적으로 지속되다가, 다시 다른 무엇으로 이행한다는 토머스 네일(Thomas Nail)의 말을 떠올린다.² 이러한 관점에서 신미경이 거대한 도자의 잔해에서 발견한 것은 물질이 특정한 순간에 취한 임시적인 형상이자, 그 이전과 이후의 상태를 동시에 품고 있는 가능성이었을 것이다.
거석(megalith)이란 선사시대의 기념물이나 구조물을 구성하기 위해 사용된 거대한 돌을 뜻하는 말로, 그 이름 역시 ‘위대한, 커다란’을 뜻하는 그리스어 mégas와 ‘돌’을 뜻하는 líthos의 결합을 어원으로 두고 있다. 과거로부터 남겨진 거석이 품은 시간과 흔적은 특정 시대를 유추하게 만들지만, 신미경은 이 물질과 시간의 관계를 역전시킨다. 우리는 대상을 통해 어떤 시간들을 읽어내는가? 무엇이 사물을 그렇게 인식하도록 만드는가?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다른 것으로 이행한다면, 그것은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가?
신미경의 ‘거석 시리즈’는 특정한 물질의 상태나 정체성으로 쉽게 귀속되지 않는다. 흙을 기원으로 삼고 도자의 소성 과정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머물지 않으며, 암석의 외양을 취하면서도 또 다른 관념을 획득한다. 이러한 경계적 상태는 작가가 작업의 시작과 제작 과정에서 마주한 우연과 변형을 받아들이면서 가능해진다. 이미 발생한 물질적 사건이 열어놓은 형식적 가능성에 응답하는 것. 그리고 연쇄 속에서 다음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 하나의 사건이 남긴 잔재를 다음의 사건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작업의 핵심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Megalith’ 연작과 더불어 2026년 새롭게 제작된 ‘Unknown Painting’ 연작을 함께 선보인다. 두 연작은 어떤 사건이나 물질적 상태를 마주한 경험에서부터 출발하여 그 안의 가능성을 또 다른 미술의 언어로 옮긴다는 점에서 서로 만난다. ‘Unknown Painting’은 벽면에 놓이면서 회화와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화면 위에 제스모나이트와 금속 분말이 발리고 쌓이는 과정에서 표면은 특정한 이미지를 재현하기보다 물질 그 자체가 만들어내는 형상과 흔적을 드러낸다. 그렇게 축적과 변화의 과정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
다시 전시의 제목으로 돌아가 본다. ‘Becoming Stone’을 ‘돌이 되어간다’는 말로 옮겨본다. 그저 돌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하나의 사물이 기존의 기원과 이름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과정을 의미한다.³ 그리고 다시 ‘잔해’라고 번역할 수 있는 ‘remains’를 생각해 본다. 하나의 종결된 사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 그것이 품은 시간과 형태가 이후에 어떤 사건을 촉발할 수 있을지를 되새긴다. 신미경의 작업에서 ‘되어감’은 이전의 흔적을 품은 채 또 다른 이름과 형상으로 이행하는 일이다. 그렇게 신미경은 사건의 끝을 새로운 시작으로 삼고, 물질을 연속적인 사건 속에서 다른 상태로 이행시키며, 그것을 무엇이라 명명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조각에 새겨 넣고 있다.
──────────
¹ 신미경 작가 노트, 2026
² Thomas Nail, Theory of the Object, Edinburgh: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21, pp. 23–25
³ 신미경 작가 노트, 2026
주최 및 주관 _ 다림문화재단, AOD 뮤지엄
후원 _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참여작가 _ 신미경 Meekyoung Shin
이사장_ 박하영
기획 _ 오주현
진행_ 심유진
디자인 _ 광인
서문 _ 문현정
사진 _ 이정우
인터뷰 영상 _ 헤즈스튜디오
.png)





















